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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바보 아내의 사랑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별 탈 없이 수십년을 함께 잘 살아온 평범한 부부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부인이 보통의 사람들과 약간 달랐던 모양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조금씩 모자라는 사람이었지요.

 

한 번은 남편이 볼일이 있어 꽤 여러 날 집을 비웠답니다. 그 사이 이웃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떡을 돌렸다는군요. 부인은 별 것 아니지만 그 떡을 혼자 먹을 수 없어 남편이 올때까지 단단히 보관을 해 두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돌아오면 함께 오손도손 먹을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이 부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조금 빠지는 사람이었죠. 남편 생각에 잘 보관한다고 한 것이 제법 더운 날씨에 아랫목 이불 속에 떡을 꽁꽁 싸매서 넣어두었던 것이죠. 안타깝게도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 떡은 이미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부인이 다소 모자라는 건 이미 동네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인지라 그의 온전치 못한 행동들은 종종 동네 사람들의 술안주거리가 되곤 했죠. 이번 일도 곧 소문이 퍼져 나갔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좋은 안주거리가 되었습니다.

 

마침 그 남자도 참석했던 어느 술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사람들은 그를 놀려댔습니다.

"그래 그 떡은 잘 자셨는가?"

"어때? 먹을만 하던가?"

"하하하 " ......

평소 마음씨 좋고 그들이 이러는게 하루이틀이 아닌지라 잘 참아 왔던 그이지만,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버럭 화를 내며 한 마디 했습니다.

"그래. 내 마누라는 바보다. 그런데 니들 그 잘난 마누라가 니들이 어디 오래 나갔다 오면 콩 반쪽 남겨놨다 주더냐?"

이 한 마디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 큰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동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더군요.

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신념

우리는 안정된 지위, 편리한 생활, 익숙한 환경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을까요?

 

친척 분 중에 목사님이 있습니다. 저 아래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목사가 되신지도 오래 되었고, 자식들 다 잘 키워 안정된 직장에 좋은 배필 구해 시집장가 잘 보냈으니 걱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부간에 화목하고 신도들에 존경 받으니 이만하면 그래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분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분이 훌쩍 선교활동을 하겠다고 동남아의 어느 나라로 떠나버린 겁니다. 이미 60이 넘은 나이에 위 모든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 것이죠. 처음 소식을 들었을땐 새삼 놀라웠습니다. 목사까지 된 분이니 그 분의 신앙심이야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나이에 이만큼 일궈놓고 그것을 다 버리고 동남아라니...

 

그 분 말씀을 들으니 그곳은 참으로 불편하다고 하더군요. 일단 날씨가 너무너무 덥답니다. 우리나라 여름날의 더위는 봄날이라는군요. 흘러내린 땀으로 옷이 푹 젖어 몸에 달라붙어서 벗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곳의 생활 수준은 우리나라 5~60년대의 생활을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한국의 거지조차도 그 곳 사람들보다는 훨씬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을거라 하더군요.

 

그 분이 그곳으로 간지도 벌써 1년도 넘은 듯 합니다. 수개월 전에 그 분을 봤을 때, 얼굴이 무척 수척해지셨더군요. 사실 저는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주위에 종교에 관계된 분들이 적잖이 있지만 그야 그분들의 사정이지 저는 어느 종교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오히려 종교를 조금 싫어한달까요..) 그리고 그 분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문득 존경심이 처음으로 들더군요. 내 가족이 있고 나의 모든 것이 있는 익숙하고 편리한 내 조국을 떠나 그 분을 그곳으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다른 꿈과 신념을 갖고 삽니다.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혹은 철학적인... 저마다 이런 것이 있지만, 과연 정말로 그것을 가슴에 크게 품고 그 어떤 역경이라도 딛고 나가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그렇다면 나는? 나의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연 무엇을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이 들더군요...

2009년 9월 17일 목요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

늘 그래왔고 별다른 것 없었던 사이. 가까워 특별히 생각할 것 없었던 그 사람이 어느날 나에게 예상밖의 심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내 기대를 저버릴때, 우리는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지? 원래 이런 놈이었나?"

 

우리는 가끔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때면 우리는 상대방에 맞서 함께 분노하거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옛말로 그의 변덕을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 정말 그가 나의 기대를 저버린 것일까? 그가 변한것일까? 역시 사람 속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런데, 혹시 그가 변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그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였을 뿐이었고 단지 그의 많은 얼굴 중 그 부분이 좀 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애써 그 모습을 외면했거나 친분이 깊다는 이유로 방심한 나머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진실인지도 모른다.

 

이런 오해를 겪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면 관계는 더 탄단해진다.(물론 영원한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그런데 화해의 제스쳐를 취할때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손해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머리로는 먼저 화해를 청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왠지 억울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숙이고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란... 억울함의 원인은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데서 온다. 이런 오해의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 것일까. 감추었던 일면을 폭발시킨 그인가? 둔감한 나인가...

2009년 9월 16일 수요일

명절 공포증

추석이 이제 보름가량 남았다. 명절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그것이 그리 좋은 기분만은 아니다. 즐겁기보단 오히려 스트레스라 할까... 사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찌 사는지 잘 몰라 그들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명절때면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까.

 

명절이란 것이 본래 즐거운 날일 것이다. 일년 중 특별한 날에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며 온 가족,친지들이 모여 즐겁게 노는 날. 조상을 기리고 풍성한 음식과 더불어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그런 날. 이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운 날이 있을까?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반가운 얼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거리 이동, 명절 음식장만과 같은 육체적인 고통은 힘든 축에도 못낄런지 모른다. 그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주변의 시선과 말들이다.

 

"결혼은 언제할거니? 아직도 짝이 없어서야..."

"○○ 이는 아직도 취직을 못했다지. 요새 청년 실업이 큰일이야.."

"이번에 옆집 개똥이는 승진했다더라. 개똥이 그 녀석 인물도 잘 났어, 성격 좋아, 능력있어, 개똥이 부모는 이제 걱정이 없겠어."

언제 그렇게 서로에게 관심이 많고 애정이 깊었는지, 평소 연락도 잘 안하던 친척들이 서로의 근황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파내어 걱정과 칭찬아닌 칭찬을 한다. 그 중 점잖은 분들은 별 말이 없지만, 이미 그곳에는 두 층의 공기가 흐른다.

 

우리는 비교를 많이 한다. 그런 비교가 극에 달하는 순간이 바로 명절인듯하다. 그런데 이 비교라는 것이 비교의 대상과 그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좋을때는 별 문제가 없다. 허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두 비교 대상 중 하나 혹은 청자 중 적어도 누군가 하나는 그 가벼운 저울질에 미소띤 얼굴과 달리 가슴은 굳어가는 것을...

 

우리 사회는 유독 타인의 사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또 그것을 비교하는데 열중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지나치게 그것에 열중한 나머지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괴롭힌다. 그것도 매년 두어차례.

해마다 안타깝다. 우리의 무의식 중에 녹아있는 그 무엇, 우리의 생활속에 배어 있는 그 무엇을 조금씩만 제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서로를 그냥 있는 그대로 봐 줄 수 있다면 명절이 조금 더 즐거워질텐데...